이번 글은 하버드 경영대학원(HBS) 경영학 담당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토머스 아이젠만(Thomas Eisenmann) 교수의 인터뷰를 정리했습니다.
아이젠만 교수는 『세상 모든 창업가가 묻고 싶은 질문들』(Why Startups Fail)이라는 저서를 통해 초기 기업의 실패 사례를 분석했는데요. EO 글로벌팀과 만난 아이젠만 교수는 ‘실패 전문가’답게 스타트업이 실패하게 되는 원인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진단했습니다. 약 30년간 기업가정신을 연구하고 실리콘밸리의 멘토로 활동해온 아이젠만 교수의 인사이트를 한국어로 정리했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인용 및 일부 편집을 거쳤습니다.
[아티클 한 눈에 보기]
1.‘실패’에 대해 연구하게 된 계기는
2.초기 스타트업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들
3.창업가는 실패를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톰 아이젠만입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입니다. 26년간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가르치고 공부했습니다. 『세상 모든 창업가가 묻고 싶은 질문들』(Why Startups Fail)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1.‘실패’에 대해 연구하게 된 계기는
실패에 대한 제 연구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는 사례 중심으로 가르치는데요. 당시만 해도 기업가에 관한 30건의 케이스 스터디 모두 성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강의 마지막에 이런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강의에서는 스타트업의 3분의 2가 실패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헌데 실패에서 배울 게 없습니까?”
타당한 질문이라 봤습니다. 다만 스타트업 실패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하려 했을 때, 관련 강의를 처음 열었을 때 걱정도 됐어요. 실패를 반복한다는 건 분명 우울한 일이잖아요. 무엇보다 MBA 학생들이 겁먹을까 봐 걱정이었습니다. (실패를 하면) 얼마나 아픈지만 보여주는 게 아닐까 우려했던 겁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우선 학생들이 이 코스를 좋아했습니다. 실패를 퍼즐을 맞추는 데 꼭 필요한 하나의 조각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참고 - “실패를 축하하다” 스타트업 피봇 사례 39가지)
예를 들어 매년 교육이 끝나면 이런 질문을 합니다. ‘5년 후에는 기업가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나요?’ 20%는 아니라고 하고, 40%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나머지 40%는 어차피 기업가가 될 것이라고 답하고요ㅎㅎ 다만 (강의를 통해)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2.초기 스타트업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들
‘좋은 실패’는 기업가가 가설을 세울 때 가능합니다. 마치 과학자가 됐다고 생각해보세요. 만약 아직 발견하지 못한 고객이 있고, 문제와 (나름의) 해결책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학자처럼)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을 겁니다.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것이야말로 기업가의 정신(soul)입니다.
물론 기업가에게는 항상 통제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코로나19 때 수십만 개의 사업체가 무너졌습니다. 기업가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팬데믹이 올지 누가 알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나쁜 실패’는 통제할 수 있는 실수를 할 때를 가리킨 표현입니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실수는 나쁜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1.시작부터 하려 함
초기 스타트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출발’(False Start)입니다. 총을 쏘기도 전에 너무 빨리 출발하면 ‘부정’ 출발이라 부르죠.
(그런 것처럼) 스타트업도 너무 빨리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빨리 구상하고 만들어서 팔려고만 하다 보니 정작 (시장이나 사업 기회를) 연구할 타이밍을 건너뛰고, 잠재 고객과 대화하며 문제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놓칩니다.
이같은 잘못된 시작은 ‘린 스타트업 방법론’의 모든 단계(practice)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서 생긴다는 점에 100% 공감하는 바입니다.
출처 : DBR
최소기능제품(MVP)을 만들어서 고객에게 빨리 맡겨보고, 피드백을 받은 후 반복하고 변경하는 것. 그게 린 스타트업의 절반입니다. 하지만 린 스타트업의 다른 절반은 “고객 발견”에 더 치중돼 있습니다.
당연히 고객 발견 작업은 시간이 걸립니다. 대략 4주가량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를) 건너뛰고 그냥 만들고 팔면 총 4개월을 날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고객을 찾아보지 않고) 4주를 아끼려다가 (만들어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전환하면서) 불량한 첫 버전에 4개월을 낭비하는 겁니다.
(참고 - 대표님, 린스타트업 반대합니다!)
잘못된 출발의 또 다른 이유는 비개발자 출신의 창업자들이 기술 스타트업을 시작하려 할 때 볼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링 팀이 필요해서 일단 팀을 합류시키면 바쁘게 만들어야 합니다. (팀을 유지하는) 비용이 상당하니까요.
보통 엔지니어들을 어떻게 바쁘게 만들까요? 만들 것을 주면 됩니다. 이때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던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개발자 출신 창업자는 다를까요? 아닙니다. 그들도 스스로 ‘부정출발’의 함정에 넘어갑니다. 엔지니어들이 가장 사랑하는 게 무엇입니까? 무언가를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 이건 개발자 출신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들 너무 빨리 만들기 시작해서 (시간과 비용과 자원에 관해) 썩 좋지 않은 자충수를 둡니다. (그러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 하거나 멈추지 못 합니다.)
(참고 - 스타트업의 90%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
*고객을 발견하는 작업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
훌륭한 책이 있습니다. 롭 피츠패트릭의 『The Mom Test』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당신은 사업가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어머니께 보여 드리면 이렇게 말씀하시죠. ‘아들아, 사랑한다. 잘 해낼 거다.’ 좋은 말이죠. 하지만 누구든 적당히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하는 답변일지도 모릅니다.
‘그래, 네 아이디어가 정말 마음에 드네요. 알았으니까 얼른 지나가렴.’
결국 기업가는 진짜 피드백을 받아야 합니다. 혹여나 사람들이 (기업가 본인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지 않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 - 프로덕트 만들 때 꼭 봐야 하는 체크리스트 (11가지) )
2. 이해관계자간의 관계 악화
(초기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다른 두 가지 패턴은 사람에 관한 겁니다. 벤처 사업과 관련된 모든 사람, 창업자 뿐 아니라 팀 내부, 외부 투자자와도 연관됩니다. 이 관계들 중에 1가지 이상은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악화하면서 초기 스타트업이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잖습니다.(Bad Bedfellows)
(참고 - '조회수 100만의 주인공' 한기용 님의 오픈코칭 참석 후기 )
3.거짓 긍정
3번째 실패 패턴은 ‘거짓 긍정’(False Positive)입니다. 가끔은 온 우주가 내 아이디어가 좋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죠. 계속 시간과 돈을 더 투자해야 한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아이디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발견하는 패턴입니다.
거짓 긍정에 빠져있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지체하면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는 이런 식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초기 이용자, 얼리어답터에 의존하는 겁니다. 제품을 찾아내 열광하는 첫 번째 고객입니다. 하지만 얼리어답터의 요구 사항이 주류 고객의 요구사항과 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업이 커지면서 고객을 발견할 때 얼리어답터와 주류 고객의 요구가 일치하는지 봐야 합니다.
초기 유저와 주류의 니즈가 일치한다면 비교적 쉽습니다. 허나 이 둘의 바람이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얼리 어답터들을 위해 만들었던 제품을 주류에 맞게 구축하면서 얼리어답터에게도 적합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관해 드롭박스는 흥미로운 예입니다. 드롭박스 창업가들은 쓰기 쉬운 걸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어머니가 레시피를 (온라인으로) 저장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와 달리) 드롭박스의 극초기 고객은 거대한 파일을 다루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습니다. 컴퓨터 장치를 다양하게 이용하고, 파일 관리에도 복잡한 요구사항을 갖고 있죠. 회사 입장에서는 얼리어답터들을 위해 드롭박스를 만들지, 주류에 맞게 만들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결국 주류 고객을 선택했고 성공했고요.
물론 주류 고객을 선택하는 게 늘 옳은 선택은 아닙니다. 사업가로서 얼리어답터와 주류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참고 - 부부가 투자금 없이 연매출 10억 SaaS를 만들었다 )
*실수 혹은 실패하고 있는지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가설을 목록으로 리스트업 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루션의 어떤 면이 고객에게 어필할지, 우리 제품에 대해 어떻게 인지시킬지 등등. 사업가로서 해야 할 일은 가설을 실험하고 또 테스트 해보는 겁니다. 옳을 때도 있어서 계속 나아가기도 하고, 틀릴 때도 있어서 방향을 바꿉니다.(pivot) 피봇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문제를 피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라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겁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너무 빨리 움직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창업가는 피드백에 너무 빨리 반응합니다. 지그재그로 아이디어를 계속 바꿉니다. 반면 어떤 대표는 너무 느리고 고집이 셉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과학자처럼 생각해야죠. (그래서)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3.창업가는 실패를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개인적인 경험(과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은 (다른 사람의 케이스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실패와 관련된 모든 감정, 부족함, 자신의 오류 등등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이를 통틀어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FAE : 관찰자가 다른 이들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 요인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행위자의 내적/기질적 요인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
실수를 했다면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실력이 부족했던 겁니다. 당신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 안 하죠. 실수를 저지르면 “햇빛 때문에 공을 놓쳤다”거나 “이쪽에서 큰 소리가 나서 한눈을 파느라 슛을 못 했더” “제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좋은 선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게 인간의 기본적인 스탠스(default)이자 일상입니다.
기업가로서 이러한 귀인 오류를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스타트업이 실패에 다다른다면 당신의 모험이 실패한 것과 같지만, 너무 가슴 아픈 고통이기 때문에 대체로 다른 사람을 탓할 겁니다.
‘제 공동창업자가 흥미를 잃었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았습니다’
‘제 투자자가 저를 잘못된 방향으로 밀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동창업자, 그 투자자를 선택한 건 당신입니다. 그 행동은 그들이 했을지 몰라도 당신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실패로부터 배우기 위해 중요한 것은 (실패로부터 야기하는) 강렬한 감정이 가라앉게 두고, 산만함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반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회사가 실패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쁜 짓을 했지만 자신도 실수를 했다고 인정하고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받아들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참고 - 스타트업 대표의 정신 건강)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생기는) 진짜 문제는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겁니다. 아예 실수라고 인식하지도 않고, 자꾸 ‘다른 사람의 잘못입니다’를 일관하면 “나쁜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업가의 전형적인 패턴은 시장을 탓하는 유형입니다.
‘경쟁자들은 미친 짓을 했습니다’
‘규제 기관과 정부도 미쳤습니다’
(그건 당신이 어찌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당신의 실수를 나쁜 실패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은 경영과 리더십에 있습니다. 산업이나 시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지어 잘 알지 못 하는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면) 잘못된 리더십으로 문제를 키울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유형은, (이전 경험에서) 너무 많은 책임을 지게 되면 이후 창업을 다시 하지 않게 되는 케이스입니다. 실수를 너무 많이 했어, 나는 나쁜 사업가야, 다시는 창업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죠. 물-론 그럴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업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패로부터 배울 때 창업가의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출처 : HBS
*첫 창업에 실패해도 다음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가요?
첫 사업가의 성공률과 실패율에 대해 조사했는데요. (여기서 성공의 정의는 재정적인 의미입니다.) 첫 창업자의 성공률은 21%입니다. 21%로 꽤나 낮은 겁니다. 반면 첫 창업을 성공한 후 두 번째 시도를 한 창업자의 성공률은 30%입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창업에 실패한 79%는 어떨까요? 그 실패한 창업자의 절반이 5년 안에 새 사업을 시작하는데요. 두 번째 사업에서의 성공률은 22%입니다. 말인즉슨, 첫 창업에 실패한 사람마다 (다음 사업에서)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평균 실패율이 70-80%이니 (성공하려면) 실력이 좋아야겠죠. 모두가 일론 머스크일 수는 없는 겁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업가에게 사업은 하나의 직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스타트업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며 (시장의 파이를 키운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대화하는 데 쓰이는 수많은 기술과 제품이 스타트업에 의해 탄생했으니까요. 20년 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현실로 가져오는 이들입니다.
80%라는, 초기 스타트업의 실패율은 그래서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가들이 다시 창업에 뛰어드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난 실패한 창업가들은 대부분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러워 했어요. 자신들이 만들었던 팀과 제품에 자부심을 느꼈죠. 결국 기업가 정신은 삶에 대한 ‘접근법’입니다. 실패는 늘 다음 기회에 적용할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 - 하버드 MBA 교수가 분석한 ‘스타트업이 망하는 6가지 패턴' )
*해당 아티클은 2023년 9월 23일에 발행된 영상 <What I learned about Failure after 26 Years of Research at Harvard>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 하버드 MBA에서 30년 가까이 기업가정신과 스타트업의 실패를 연구한 전문가 톰 아이젠만 교수의 인터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원문)
https://eopla.net/magazines/7101#?utm_source=copy_link&utm_medium=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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